김제동 - 우리시대 최고의 엔터테이너

  김제동은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벤트MC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재야’에서 다져온 ‘끼’와 내공을 모은 입담을 자랑하는 그는 방송 데뷔 8개월 만에 각종 오락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로 각광받고 있다.


 긴 막대기를 든 한 남자가 무대 위에서 연방 허공을 찌른다. 어설픈 이연걸 흉내를 마친 그는 이내 야구장의 투수로 폼을 바꿔 잡는다. 역시 그럴 듯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졌다.
 
SBS ‘야심만만’ 녹화 직전 이벤트MC 출신 방송인 김제동(29)이 자신의 장기인 ‘관객 바람잡기’를 살짝 보여줬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객석 앞을 어슬렁거리는 그는 덜 놀았다는 모양새지만 관객들은 이미 바람이 잔뜩 들어간 표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관계자는 “제동씨는 시키지 않아도 관객들 어깨에서 미리 힘을 빼놓는다”고 귀띔해줬다.
‘노는 아이’ 김제동.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놀아야 에너지가 샘솟는다”는 그는 무척이나 바빠진 요즘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에 30분쯤 일찍 도착해 객석의 분위기를 돋운다. 그는 “3명 앞에선 얼굴이 붉어지고 말도 잘 못하지만 3,000명 앞에 서면 놀아보고 싶어진다”며 “대학축제 같은 이벤트 무대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김제동은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벤트MC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과 직접 마주하는 대학축제 등에 비하면 방송은 아직 남의 옷을 입은 듯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재야’에서 다져온 ‘끼’와 내공을 모은 입담을 자랑하는 그는 방송 데뷔 8개월 만에 각종 오락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방송중에 했던 말들이 그의 팬카페(cafe.daum.net/kimjedong)에 ‘김제동어록’이라는 이름으로 모아져 눈길을 끈다. 이곳에는 “이효리의 손에 맞아서 죽으면? 전문용어로 안락사죠” 등 순간적 기지가 넘치는 말에서부터 “한 방울의 이슬에도 신의 섭리가 들어있듯이, 난 우리 모두가 다른 손금과 얼굴,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행운인 것 같다”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 아래의 아름다운 꽃을 느끼지 못한다” 등 그만의 철학이 담긴 글들로 가득하다.
 
이같은 김제동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순탄치 않았던 그의 이력을 말해 준다. 김제동은 경북 영천의 농가에서 1남5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100일도 안돼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고 경제적인 책임은 어머니와 누나들의 몫이었다. 그는 “형편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회상했다.
 
“술집 웨이터도 하고 도로공사 현장에서 막노동도 했지만 제가 특별히 고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그렇게 살지 않았나요?”
 
알려진 대로 김제동은 지난 10년간 이벤트MC로 활동했다. 1996년 모교(계명전문대)의 행사 사회를 본 것이 인연이 돼 이벤트MC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처음부터 능숙했던 게 아니다.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당시 대구·경북지역의 이벤트 사회를 주름잡았던 방우정 선생님을 만났죠. 대학축제·경로잔치·청소년문화행사 등에 3년간 잔심부름을 하며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말투와 임기응변 하나하나를 배웠습니다. 제2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에요”
 
김제동을 이벤트MC로 만들어준 이가 방씨라면 그가 방송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은 가수 윤도현이다. 김제동은 4년 전 우연히 윤도현을 만났고, 이후 윤밴의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그 진행을 맡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김제동은 윤도현으로부터 KBS2TV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 MC를 봐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서울의 방송은 대구에서 올라온 이벤트MC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도현이 형이 고집을 피워 저를 불렀던 거였어요. 그 누구도 저를 반기지 않더군요. ‘쟤 뭐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방송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난 놈 정도로 보였던 거죠. 그래서 저를 원하지 않는데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대구로 내려왔어요”
 
윤도현은 낙심한 김제동에게 자신의 돈으로 출연료를 주면서 사전 MC를 맡도록 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에게는 방송사에서 정식으로 출연료를 주는 것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 김제동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을 시작하는 행운을 잡았다.
 
“저는 인복이 참 많아요. 방선생님, 도현이형… 모두 저한테는 은인들이에요. 항상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이제부터라도 갚아야죠”
 
김제동은 지난해 2월 11년 만에 모교를 졸업했다. 6남매 가운데 대학 졸업자는 그가 유일하다. 그는 “엄마가 남편 없이 산 한을 아들 덕분에 다 풀었다면서 무척 기뻐하셨다”며 허공을 응시했다. 최근 연세대에서 특강을 한 그는 대학 졸업 전에도 모교를 비롯해 대구지역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레크리에이션 관련 수업을 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엄마와 누나들도 잘 살고, 꿈이었던 선생님도 해봤고…”라며 짓는 그 특유의 눈웃음에서는 고생 끝에 일가를 이룬 이의 성취감이 느껴졌다.
“야인 10년 기본기 탄탄 못생긴게 최대 무기죠”
 
◇주변사람들이 말하는 김제동
 
지난해 12월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방송을 시작한 김제동은 8개월 만에 3개 방송사 6개 프로그램에 출연중이다. 그는 MC로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없다”고 대답하면서 수줍어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장점과 웃음의 비결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답을 내놓았다. 웃기는 MC 김제동의 특징을 들어봤다.
 
“야인생활을 많이 해서 내공이 대단하다. 누구든 상대방을 올렸다 놨다 할 수 있는 1대 1의 최고수다. 특히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에도 자신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대화가 가능하다. 녹화할 때 노인분들부터 챙기는 인간미도 만점이다” (MBC ‘까치가 울면’ 김영진 PD)
 
“못생긴 것도 김제동의 무기다.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위로를 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상대방과 관객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드는 최고의 기술이다” (SBS 예능국 신정관 책임PD)
 
“자신을 낮추는 것이 김제동 개그의 특징이다. 강호동 같은 ‘강자’에게는 계속 눌리다가도 마지막에 ‘한방’ 날림으로써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적절한 표현을 구사하는 똑똑한 방송인이다. 친근한 외모가 시청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또 약간은 불쌍해 보이는 미소가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한다” (SBS ‘야심만만’ 최영인 PD)
 
“개인기도 없고 성대모사도 못하는 게 나와 비슷하다. 순발력이 뛰어난 점이 진행자로서 가장 큰 장점이다. 또 10년 간의 실전 경험이 있어서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것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김제동만의 스타일을 만든 것 같다” (개그맨 이홍렬)

언제부터인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남다른 입담을 과시하는 한 경상도 사나이가 있다.
 
올해 초부터 SBS "야심만만",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MBC "까치가 울면" 등의 TV프로그램과 라디오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김제동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축제 및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로 대구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사전MC(일명 바람잡이)로 서울에 입성한 후 6개월 만에 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17일 인터뷰 자리에서도 꽤 유명한 여자 탤런트를 보고 "저 분이 누구세요"라고 기자에게 살짝 물어볼 정도로 "연예계 물정"에 어두운 김제동이지만 거리에 나서면 사인을 받기 위해 팬들이 줄을 선다. 너무나 평범한 김제동을 순식간에 스타로 만든 그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인기비결 뭔가
 
#편안한 이미지
 
김제동의 인기비결은 ‘뚝배기 장맛’ 같은 구수함이다. 단지 ‘편안하게’ 생긴 얼굴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편안함에는 평범한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숨어 있다. 1남5녀 중 막내인 그는 생후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누나들 손에 자라면서 고등학교 시절 공사장 막일과 룸살롱 웨이터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그는 “돈을 많이 벌면 트럭을 동원해 꼭 집 앞 시장에서 할머니들께서 파시는 나물을 싹쓸이해 사고 싶었다”고 고백할 만큼 고생을 해봤다. 10여년간 가슴에 별처럼 간직하고 있는 열병 같은 사랑도 겪어봤다. 그가 여느 연예인과 달리 박수를 받는 이유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을 법한 삶의 질곡들을 아주 솔직하게 펼쳐놓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연구
 
그가 하는 말들은 결코 ‘말재간’에 그치지 않는다. 불철주야 끊임없이 공부하기 때문이다.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하면서 밤늦게까지 모니터를 하며 ‘준 전문가’가 됐다. 학창 시절에도 책과 신문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평소 밑줄을 긋고 외운 구절을 이벤트 사회를 보면서,방송하면서 한두 마디씩 할 때 그는 더욱 빛이 난다.
 
최근 한 연예게시판에 김제동이 독일 속담을 인용해 “여러분은 아직 금의 아름다움보다 별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나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마무리한 것을 본 한 팬은 “가슴으로부터 뭔가 뜨거운 것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허영만의 ‘사랑해 사랑해’를 줄줄 인용했다. 그는 “사실 외워서 하는 설정인데 모두 감동받는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하다.
 
이어 최근 베스트셀러인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권하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메모를 했다. 이라크전 파병문제,미군 문제,시민단체,네티즌 등에 대해 한참이나 열을 올리는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탄탄한 철학
 
그가 주는 웃음이 공허하지 않은 이유는 탄탄한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웃기는 사람’과 ‘웃음을 주는 사람’은 다르다”고 말했다. 사투리 말투나 ‘갈굼유머’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못생긴 얼굴을 무기로 삼든,무대 위 몇 명을 제물로 삼든,사투리를 쓰든,‘조국과 민족 모두 웃을 때까지’라는 내 모토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그런 모토를 가진 이유는 삶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극도로 슬프면 웃는다. 결국 웃음과 눈물은 통한다”며 “판소리가 즐거운 이유는 한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어려움에 절망하지 않는다. 김제동은 “극단적으로 내려가봐야 웃을 수 있다”며 “공도 높은 데서 떨어뜨려야 높이 튄다”고 말했다.